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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8. 17:51 헌헌

[키르곤]しんじゅう

제가 쓰는 2차 창작 글에선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 원치 않은 결혼, 폭언, 폭력, 생명경시, 자살 및 자살사고, 가스라이팅 등 비윤리적 요소※가 자주 등장하며, 열람 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일절 책임지지 않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7PODXQckTNU



피는 못 속인다지. 제 아비를 쏙 빼닮은 곤은 역시나 한 곳에 머물 줄을 몰랐다. 죽는 순간까지 함께이고 싶어 하는 자신과 달리 같이 있으면 좋지만 단지 그 뿐인 곤을 키르아는 예전부터 탐탁찮아 했다. 역시 넌 그 녀석의 아이구나. 언젠가 이모에게 들었던 말. 무신경한 자신의 행동에 지금처럼 키르아가 상처 입은 표정을 지을 때면 이따금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참고 맞춰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곤이었다. 오래 전 지칠 대로 지친 키르아가 자신을 두고 아르카와 떠났던 걸 기억한다.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왜 그때 붙잡지 않았냐던 키르아의 말 또한 어제처럼 선명했다. 그때 나는 뭐라고 했었더라. 키르아가 원하던 답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밖엔 기억나지 않아. 사실 키르아가 듣고 싶어 하던 말이 뭔지 알고 있었어. 그런데 자신은 왜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부탁이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봐. 변명이라도 좋으니……. 미안해.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언제부턴가 지겹도록 봐온 표정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정말로 우는 일은 없을 거란 걸 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야 키르아는 내 앞에선 한 번도 운 적이 없었으니까 말야. 다른 사람 앞에서야 어떤지 곤은 알지 못했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 이제야 생각났어. 그날 뭐라고 대답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굳이 말해주지 않았는지도. 키르아를 힘들게 하려던 생각은 없었어.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단지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기다린 것뿐이었다. 헌터 시험 때 히소카를 엿봤던 것과 같이. 가장 적합한 때를. 그때나 지금이나 곤이 말해야 할 답은 하나였고 머리가 나쁜 그였지만 두 번이나 오답을 고를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같이 죽을까?

?

키르아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키르아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 정말로.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는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최선이야. 미안해. 그렇지만 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키르아 밖에 없어. 아니, 키르아가 아니면 안 돼. 그러니까 부탁이야 키르아…….

 

 

같이 죽자니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각별했다.

 

 

태어난 날이 다르다면 적어도 죽는 날은 같아야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날 때부터 죽음과 가장 가까이 살아온 키르아는 같이 살아가는 것보단 죽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곤 했다. 널 위해서 죽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 널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게. 최악의 경우엔 너와 함께 죽어도 좋아. 같이 죽고 싶다고, 수백, 수천 번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도 내색한 적도 없었기에 키르아가 당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키르아는 좋겠어. 잊고 싶은데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말, 혹은 죽을 때까지 잊고 싶지 않은 말. 대개 그것들은 아주 좋거나 나쁘기 마련이고 안타깝게도 키르아의 경우엔 대부분이 후자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나쁜 기억만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기에 키르아는 오늘날까지 살아갈 수 있었다. 곤에게 고백 받았던 날을 기억해? 당연한 거 아냐. 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어. 좋아해. 그때도 지금과 같았지. 불행과 마찬가지로 행운 역시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는 걸 키르아는 한 번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고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자신을 꿰뚫듯 바라보는 곤은 그 날과 똑같았다.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글쎄, 키르아랑은 이미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으니까 꼭 가야겠다 하는 곳은 없어. 그럼 죽고 싶은 곳은? 키르아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좋아. 바보야, 그만 둬. 부끄럽게……. 키르아도 참, 이제 와서 뭘 새삼! 가족들한테 인사해야 하지 않아? 으응, 관둘래. 미토 이모가 슬퍼할 게 뻔한 걸. 알게 되면 분명 엄청 울 거야.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편이 나아. 그럼 아빠는? 진한테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 이미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해버려서 할 말도 없고. 먹고 싶은 건?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없네. 어떻게 죽고 싶다 이런 건 없어? 그건 키르아한테 맡길게. ! 아픈 건 싫어. 의외네. 침대에선 좋아했으면서.

하아……. 키르아? 왜 그래? 아무 것도 안 정해졌으니까 그러지. 그치만 난 키르아랑 같이 죽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걸. 곤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였어. , 너무한 거 아냐? 너 말야, 먼저 말을 꺼냈으면 아무 의견이나 좀 내보지 그래. 그러니까, 난 키르아랑 같이 죽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너 진짜……!

키르아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

키르아가 하고 싶은 걸 말해 봐. 이번엔 전부 키르아에게 맞출 테니까.

, 나는…….

 

 

신혼부부가 여행지나 가구를 고르듯 둘은 마지막을 장식할 것들을 고르기 바빴다. 신중히 칼날을 매만지던 키르아는 손끝에서 핏방울이 맺히는 걸 보곤 미소를 지었다. 아픈 건 싫다고 했으니까 최대한 잘 드는 게 좋겠지. 마지막인 만큼 연인의 너덜너덜해진 손목을 보는 건 사양이니까 말야. 혹시 모르니 진통제도 사둘까. 독이 듣지 않는 대신 약도 듣지 않는 자신에겐 영 쓸모가 없지만 곤에겐 필요할 지도 모른다. 멜론? 레몬? 무난하게 딸기향이 제일 나으려나. 알록달록한 게 얼핏 보면 캐러멜이나 사탕, 껌 같은 콘돔들을 들고 한참 고민하던 키르아는 이내 전부 집어 들었다. 옛날엔 하나 사는 것도 민망했었는데. 콘돔을 앞에 두고 지난 세월을 곱씹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키르아, 다 골랐어? , 곤은? 나도 다 골랐어. 뭐 빠트린 건 없지? 마지막이니까 빠트리면 안 돼! 마지막……마지막……, 초코로보!

 

 

? 얘도 참, 올 거면 온다고 미리 말하라 했잖아! 평생 들어왔던 부모의 목소리보다 친근한 목소리가 키르아를 반겼다. 분명 들어본 건 손에 꼽을 만큼 적을 텐데 이상한 일이지. 우리 집? 내 생각해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아니. 그냥 내가 가고 싶어. 간만에 너희 이모도 뵐 겸. 아이들의 시간과 달리 어른의 시간은 무척 느리게 가서 연인의 친척은 오래 전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안녕하세요……. 키르아구나!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못 알아보겠어! 모든 게 여전하구나. 섬이라 그런가 하나도 안 바뀌었어. 가슴 안쪽이 근질거리는 게 꼭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향수라고 하던가. 곤에게 말한다면 분명 이해 못 할테지만. 그리웠던 감각에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뛰었다.

이만 가볼게. 벌써? 좀 더 있다 가도 되는데.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구나. 언제 다시 올 거니? 으음……오래 걸릴 것 같아. 그래. 가끔 편지 해.

키르아군, 곤을 잘 부탁할게.

 

 

, 으응……키르아, 거기, 거기 기분 좋아. 좀 더……. 자신을 찾으며 헐떡이는 연인의 목소리. 목에 감겨오는 팔의 무게. 젖은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 지난날이 어쨌든 간에 지금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아래가 뻐근해져 온다. 앞으로도 계속 단 둘 일거라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어서 지금 당장 죽고 싶을 정도야. 가볍게 유두를 깨물자 신음과 함께 움찔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혼자 보기 아깝지만 그렇다고 남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공들인 만큼 풀어져 손가락 두 개가 무리 없이 들어가고 나서야 키르아는 준비했던 콘돔을 꺼냈다. , 이 중에서 골라봐. 뭐가 좋아? 곤은 제각각 달콤한 향을 풍기는 콘돔들을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침대 옆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곤 키르아에게 입을 맞췄다. 마지막이니까 키르아의 전부를 갖고 싶어.

 

 

마지막 정사가 끝난 후 둘은 나른해진 몸을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담갔다. 아픈 건 싫어. 그렇게 말하던 곤을 위해 키르아가 고민 끝에 내린 방법이었다. 키르아는 날이 선 칼을 하나는 자신의 손에, 또 하나는 곤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셋 세면 동시에 그어주는 거야. 나는 곤 손목을, 곤은 내 손목을. 하나, , . ! 두 개의 칼날이 서로의 여린 손목을 깊게 파고들더니 이내 욕조 안에서 붉은 꽃 두 송이가 흐드러지게 핀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 그 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많이 괴로웠지. 미토 이모가 예전에 나한테 하던 말이 하나 있었어. 넌 역시 그 녀석의, 그러니까 진의 아이라고. 하하,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데 맞는 말이야. 이것 봐, 벌써 욕조 안도 물이라곤 온데간데없어……이 날만을 줄곧 기다려 온 건 키르아만이 아니야. 알고 있었냐니, 키르아답지 않게 당연한 얘길 하는구나. . 알고 있었어. 아주 오래 전부터. 그야 난 키르아랑 사랑하는 사이인 걸.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난 키르아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내가 키르아에게 했던 모든 말들은 전부 진심이야……그나저나 따뜻한 게 정말 기분이 좋네. 자꾸만 잠이 와. 먼저 잘 테니까, 키르아도 빨리 만나러 와야 해? 죽기 전 키르아가 흘린 눈물은 필시 기쁨의 눈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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