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라는 대목을 하루 앞두고 백화점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입구 앞에 놓인 가판대가 초콜릿을 가득 쌓아놓은 채 테타를 반겼다. 지하 1층엔 발렌타인데이라고 적힌 분홍색 간판들이 작은 하트와 함께 매장 이곳저곳에 걸려 있어 누구라도 지금이 발렌타인 시즌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직원들은 마치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생글거리는 미소와 한껏 높인 목소리로 매장 앞을 지나가는 손님들을 끌어당겼고, 매대에 진열된 초콜릿이며 마카롱, 쿠키 같은 것들은 아기자기한 내용물과 귀엽고 고급스러운 포장으로 손님들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인파 속에 파묻힌 테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작은 키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을 테타에게 직원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누구한테 선물하실 건가 봐요~ 남자친구?”
“아, 네. 남자친구랑 회사 사람들요.”
“그러시구나. 지금 행사기간이라 다 20프로 할인하고 있거든요~ 남자친구분은 단 거 잘 드세요?”
사르코프? 단 걸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았지. 그는 까다로운 자신의 상사와는 달리 호불호가 딱히 없는 남자였다. 대충 주면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하는 테타의 말에 직원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이게 지금 제일 잘 나가요.”
진열대 유리 위를 톡톡 두드리는 손가락 아래엔 열두 개의 초콜릿들이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한 채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우와 귀여워. 테타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그쵸, 너무 귀엽죠. 포장은 이렇게 돼 있어요~.”
잘 정돈 된 손가락이 이번엔 초콜릿 뒤쪽을 가리켰다. 연한 민트색 상자에 매끈한 재질의 흰색 리본이 깔끔하게 묶인 채로 진열되어 있었다. 진짜 귀여워. 테타가 홀린 듯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해야지.
“……저건 내용물 다 똑같고 포장만 다른 건가요?”
“네, 상자 색깔만 다르고 안에 내용물은 똑같아요~.”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 똑같은 흰색 리본을 단 채 색깔만 연분홍색으로 다른 포장상자가 테타의 시선을 끌었다. 귀여워. 민트색도 좋지만 역시 연인 사이엔 이런 게 더 낫겠지. 다른 날도 아니고 발렌타인데이인걸.
“그럼 일단 이거랑……천천히 골라도 되나요?”
“네, 물론요. 천천히 고르세요~.”
사르코프 건 골랐으니 됐고, 다른 직원들은 대충 사다주면 될 거고, 그럼 이제 왕자님 것만 고르면 되나. 테타는 언젠가 체리드니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단 건 질색이야. 그런 건 계집들이나 먹는 거지. 여자들은 이상하게 그런 걸 좋아하더라?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그런 사람한테 초콜릿을 챙겨주라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사르코프가 그런 말을 한 데엔 다 이유가 있으리라. 단 건 질색이랬으니까 웬만하면 안 단 게 낫겠지. 달지 않은 초콜릿이라니 무슨 펄 없는 밀크티도 아니고.
“상사분이 단 걸 안 좋아하셔서 그러는데 그런 것도 있나요? 가격대가 좀 있는 걸로요.”
“그럼요~. 여기 이건 단 맛이 적고 씁쓸한 맛이 강해서 어르신들도 잘 드세요.”
어르신들이라는 직원의 말에 테타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긴, 왕자님이 늙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젊지도 않지. 직원이 추천한 건 고급스러운 다크브라운 색깔의 상자에 초콜릿 20개가 들어있는 제품이었다. 아까 귀여움으로 도배한 사르코프의 것과는 정 반대인 게 오해의 여지라곤 눈곱만큼도 줄 일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카카오 함량이니 카카오 버터가 어떻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역시 한몫했다. 제 아무리 미친 사람처럼 보여도 상대는 왕족이었다. 적당한 걸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작년에 사르코프의 말을 듣고 대충 와인을 선물했다가 얼마나 불안에 떨었던지! 발렌타인데이인데 초콜릿은 어디 갔냐며 죽은 눈으로 쳐다봤을 땐 정말이지 죽는구나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날 죽은 건 테타나 사르코프가 아니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건장한 남자였고, 비겁하게도 내심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초콜릿 하나 못 받은 게 그렇게까지 미친 사람처럼 반응할 일인가? 단 건 싫다면서 초콜릿을 찾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원래 제 4왕자는 그런 사람 아니던가.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쨌든 그 미친 상사에게 직접 만든 걸 주자니 괜히 기분이 더럽고, 일류 파티셰를 부를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자니 돈이 아깝고, 처음부터 가격대가 있는 걸 선물하는 게 그나마 가장 쉽고 확실한 선택지였다.
“이걸로 할게요. 그리고 저기 초콜릿 9개 들은 것도 열 개 주세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카드를 건네받은 직원의 입꼬리가 비실비실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콧노래를 부를 것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할부는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일시불로 해주세요.”
“네, 잠시만요~.”
고르는 건 한참 걸렸는데 결제는 순식간이었다. 카드 단말기는 카드를 꽂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영수증을 토해냈다. 직원은 영수증을 끊은 뒤, 숙련된 솜씨로 쇼핑백 안에 초콜릿을 담아 테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뒤돌아서 영수증을 살핀 테타의 미간에 주름이 얕게 새겨졌다. 솔직히 다른 직원들이나 사르코프 건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직장 동료고, 애인이니. 허나 체리드니히의 몫은 당장 뒤돌아서 다시 환불해버리고 싶을 만큼 아까웠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어차피 테타는 지금도 충분히 차고 넘치게 벌고 있었기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좋아하지도 않는 걸 선물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작년과 달리 왜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사람한테 돈까지 써가며 초콜릿을 선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저기요!”
우선-
“네, 손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작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뇨, 파베 초콜릿도 하나 계산해주세요.”
초콜릿은 충분히 산 거 같으니 작년의 이야기를 해보자.
“단 건 질색이야. 그런 건 계집들이나 먹는 거지. 여자들은 이상하게 그런 걸 좋아하더라?”
“그러시군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왕자에게 초콜릿을 좋아하냐 물었을 뿐이었다. 그의 성격상 좋아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설마 저런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한 것도 아니어서, 테타는 궁금하지도 않은 그의 여성관이 어떤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계집들이나 먹는 거라니. 참 한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본 내 잘못이지.
“테타쨩은 단 거 좋아해?”
“네? 뭐, 싫어하진 않습니다.”
“흐응-.”
테타쨩도 여자라 이거지. 그렇게 덧붙인 체리드니히의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냥 안 좋아한다고 말했어야 했나. 후회가 물밀 듯 몰려왔다. 그가 싫어하는 여자 안에 단 걸 좋아하는 여자도 들어갈 것 같았기에. 아니, 성격 상 반드시 들어가겠지. 사르코프랑 결혼하기로 약속했는데 식도 못 올려보고 벌써 죽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
“별거 아닙니다.”
“에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아, 이 인간의 집요함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 며칠 후면 발렌타인데이라서, 일단 직장 상사니까, 그냥 넘어가기도 뭐해서 예의상 물어본 것뿐이다. 허나 그것도 괜한 짓이었다. 상대는 여성관이 현대랑은 한참 뒤떨어진 제 4왕자로 그 정도가 현 국왕인 나스비 보다도 심한 자가 아니던가. 멋대로 쓸데없는 의미부여를 하는 건 정말 사양이다.
“정말 별거 아니니까요. 신경 쓰이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뭐야, 사람 궁금하게. 설마 나한테 관심 있어?”
거 봐. 괜한 짓이라니까. 관심이라니.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약속한 테타가 관심을 가질만한 상대는 사르코프 말고 전무했다.
“예? 그게 무슨……아뇨, 그럴 리가요. 별다른 일 없으면 이만 퇴근해도 괜찮을까요.”
체리드니히는 테타를 쳐다보지도 않고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그래, 알았어. 퇴근해~.”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아 참, 테타쨩.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 막 방을 빠져나가려던 참이었다. 체리드니히의 부름에 테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금방 표정을 바꿔 체리드니히 쪽으로 다시 뒤돌아섰다. 표정변화가 빠른 게, 테타가 경호원이 아닌 배우를 하고 있었다면 아마 올해의 여우주연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으리라.
“난 단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테타쨩이 주는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 네.”
방금 전까지 질색이라고 했으면서 뭐 어쩌라는 건지. 설마 체리드니히가 자신에게 마음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테타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이는 훗날 테타가 당뇨에 걸리기 직전까지 초콜릿을 먹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와, 고마워. 뭐 이런 걸 다 준비했어. 땡큐-. 헤엑, 너무 비싼 거 아냐? 이렇게 받으면 다음 달에 난 뭐 해주냐~. 잘 먹을게. 안 줘도 괜찮은데. 발렌타인데이 당일. 출근과 동시에 초콜릿을 돌리면서 테타가 들은 말들이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 선물한 보람이 있는 반응들뿐이어서 테타는 묘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맛에 돈 벌지. 양손 가득했던 쇼핑백은 어느새 하나 빼고 다 제 주인을 찾아간 지 오래였다. 제일 비싼 초콜릿을 건네준 사르코프에겐 일 끝나고 저녁에 보자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보자니! 사르코프의 말 한마디에 온몸이 근질거림과 동시에 퇴근까지 아직 한참 더 남았다는 사실이 테타를 절망 속으로 빠트렸다. 퇴근. 퇴근을 하려면 상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상사의 허락을 받으려면 좋든 싫든 얼굴을 봐야 한다. 매일 보는 사람이지만 오늘처럼 뭘 선물해야 하는 날은 특히나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직장동료 중 한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선물했다는 이유로 재떨이로 머리가 터지도록 얻어맞았던 걸 기억한다. 하아-. 테타는 손가락 끝에 걸쳐진 쇼핑백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이내 꽉 붙잡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체리드니히가 소파에 누워있는 채로 테타를 반겼다. 다행히 나른하고 기분 좋아 보이는 게 수틀렸다고 대가리를 깰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괜찮아. 무슨 소리가 나면 사르코프가 알아서 구급차를 부르던가 하겠지. 쇼핑백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다른 게 아니고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만 마음에-.”
“와, 테타쨩이? 나한테?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잘 받을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고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일으켜 쇼핑백을 낚아챈 체리드니히의 반응은 솔직히 좀 과할 정도였다. 아침부터 약이라도 해서 맛이 간 거 아냐? 테타가 말없이 공포에 떨고 있을 동안 체리드니히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대에 찬 얼굴로 쇼핑백 양면에 붙은 테이프를 뜯었다. 쇼핑백 안에서 포장된 선물을 꺼내고, 포장을 뜯기 전 이리저리 살펴보고, 포장을 하나하나 벗기고 상자 안에서 와인을 꺼내는 동안 체리드니히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장관이었다. 테타 본인이 선물한 것만 아니었으면 아마 이 광경으로 일주일은 웃으며 잠들 수 있었으리라. 허나 안타깝게도 체리드니히를 저런 표정으로 만든 건 다름아닌 테타 자신이었다. 아직 얻어맞지도 않은 뒤통수가 벌써 욱신거리는 듯했다.
“펴, 평소에 술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오늘 발렌타인데이 아냐? 초콜릿은?”
우와, 눈이 죽어 있어. 아직 추운 날씨인데도 목 뒤로 땀이 줄줄 흘렀다. 테타의 시선이 체리드니히 뒤에 있는 인체의 신비 전시회에나 나올 법한 컬렉션 쪽으로 향했다. 대답을 잘못 했다간 단순히 뒤통수가 터지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르코프와 데이트는커녕 죽어버린 애틋한 첫사랑으로 그에게 기억될 수도 있었다. 신중히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만 뭐라고 해야 해? 단 건 질색이라는 사람이 초콜릿은 대체 왜 찾냐고!
“야, 미쳤냐? 대답 안 하냐?”
“다, 다, 단 건 계집들이나 먹는 거라고 싫어하셔서…….”
얻어맞는다. 이제 뒤지게 얻어맞고 장기가 다 끄집어진 채 엠버밍 된 후, 박제되어 컬렉션에 추가될 것이다. 작품명은 언해피 발렌타인쯤 되려나. 곧 다가올 폭력에 눈을 질끈 감은 테타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의아함에 다시 눈을 떴고, 눈앞엔 되려 자기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의 체리드니히가 자신을 쳐다볼 뿐이었다.
“……하, 하하!”
“왕자님?”
약을 너무 해서 미친 건가. 아침부터 공복에 약이랑 술을 같이 해서 대가리가 돌아버린 거지. 테타의 생각대로 체리드니히는 정말 돌아버린 건지 혼자 한참을 하하하 웃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게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래……그랬었지……. 나 오늘 나갔다 올 테니까 찾지 말고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해.”
그렇게 말하던 체리드니히는 꼭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경호원한테 나갔다 올 테니 찾지 말라는 게 대체 무슨 헛소리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테타는 일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에 의의를 둬야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죽는 줄 알았어. 무슨 일이냐며 뛰어온 사르코프에게 이 한 마디 말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아삭아삭. 오물오물. 냠냠염염. 테타는 오늘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전부 먹는 걸로 풀 생각인 듯했다. 뺨을 불룩거리며 끊임없이 먹어대는 모습이 꼭 겨울잠 준비를 하는 햄스터 같았다. 테타는 스테이크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도 부족한지 텅 빈 샐러드볼을 포크로 한참 뒤적거렸고, 이를 보다 못한 사르코프가 제 몫의 스테이크를 반 잘라 양보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나이프를 쥐곤 칼질을 시작했다.
“맛있어?”
자신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테타를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왜, 뭐가 웃긴데. 그렇게 묻는 듯한 테타의 표정에 사르코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남은 스테이크 절반을 전부 테타의 접시 위에 덜어줬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연인의 모습은 정말 언제 봐도 짜릿한 게 질리지가 않았다. 제 4왕자는 테타의 이런 모습을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 다른 직원들 손에 들린 초콜릿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짓던 게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요즘 들어 유독 테타에게 치근덕거리던 체리드니히 때문에 내심 고민이 많았던 사르코프는 덕분에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한 번에 풀 수 있었다. 물론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쇼핑백을 쳐다보던 체리드니히를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지만.
테타의 잔이 비자 웨이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잔을 채웠다. 왕자님한테 뭘 선물해야 할지 모르겠어. 단 건 질색이라고 했단 말이야. 괜히 마음에 들지도 않는 거 선물했다가 수틀리면 어떡해? 그렇다고 왕자님만 안 줄 수도 없고. 발렌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 테타가 침대 위에서 했던 말들이었다. 그냥 적당히 아무거나 선물해도 될 거 같은데. 자신의 대답에 그 사람이 너처럼 대충대충 넘어갈 것 같냐며 짜증내던 테타가 품에 안긴 채 웅얼거리며 한 말을 기억한다.
-……난 너랑 결혼도 못 해보고 죽는 건 싫어.
나도 마찬가지야.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몸이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눈이 맞자 다시 한 번 정사를 치룬 밤이었다. 가시지 않은 쾌감에 멍한 눈으로 숨을 고르던 테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마음껏 즐기다 무심코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와인은 어때? 그 인간 술 좋아하지 않았어?
그거 괜찮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술병으로 얻어맞지 않게 빌어줘. 테타의 말에 끔찍한 소리하지 말라며 목덜미에 코를 파묻곤 그대로 잠이 들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넌 너무 적당히 해서 문제야. 잊을만하면 하던 테타의 잔소리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테타가 옳았다. 사르코프는 사냥감을 찾으러 나가던 체리드니히의 뱀처럼 서늘한 눈을 떠올렸다. 아마 왕자의 기분이 조금만 더 나빴더라면 오늘의 희생양은 내가 됐겠지. 사르코프 역시 테타와 결혼도 못 해보고 그의 컬렉션으로 남는 건 사양이었다.
“테타.”
“응?”
이제 슬슬 배가 부른지 칼질을 그만둔 테타가 왜 부르냐며 사르코프를 쳐다봤다. 테타는 매사에 똑 부러지며 눈치가 빠르면서도 의외로 이런 쪽으론 둔한 면이 있었다. 올해는 어떻게 잘 넘어갔지만 그 인간 성격상 내년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둘 다 살아서 결혼하려면 확실히 알려두는 편이 좋았다.
“내년부턴 그 자식 초콜릿도 챙겨줘.”
하아아-.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엎어진 테타를 웨이터가 힐끗거리던 게 벌써 작년의 일이다. 자기 몫의 초콜릿까지 산 테타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벌써 아홉시가 다 돼 갔다. 그 사람에게 초콜릿이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어. 역시 와인도 같이 사는 게 나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잘못하면 누구 놀리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에 관두기로 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테타는 현관 앞에 쇼핑백을 놔둔 후 침대에 엎드렸다. 꼭 건장한 성인 남성 여럿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피곤했다. 체리드니히의 호출로 인해 지난 한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테타였다. 바쁜 건 이제 끝났으니까 이번 주엔 쉴 수 있겠지.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이 소소하게나마 위안이 되었다. 조금만, 조금만 누워 있다가 씻어야지. 마음 같아선 그냥 이대로 자고 싶었지만 당장 내일도 출근이었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미적거리던 테타는 휴대폰을 보곤 마지못해 욕실로 향했다.
땡큐~. 역시 테타밖에 없어. 안 챙겨줘도 되는데. 고마워, 다음 달에 제대로 돌려줄테니까 기대해! 이번에도 돈 좀 썼겠다. 잘 먹을게. 작년과 비슷비슷한 대답에 테타는 데자뷰를 느꼈다. 다른 게 있다면 올해는 체리드니히 몫의 초콜릿도 있다는 것과 사르코프의 초콜릿에 좀 더 힘을 줬다는 점이었다.
“테타 네가 직접 고른 거야?”
쇼핑백 안을 내려다보며 사르코프가 감탄을 내뱉었다. 파스텔 톤의 연분홍색 상자는 누가 봐도 둘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디자인이었다. 평소 짜증내는 것과는 별개로 이런 건 또 확실히 챙겨주는 게 테타답다면 테타다웠다. 체리드니히가 보게 되면 작년보다 더 미쳐 날뛸 거라는 게 불안하긴 했지만. 사르코프는 테이프가 붙여진 쇼핑백 안이 보이지 않도록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았다.
“테타, 그 자……아니, 왕자 몫은 챙겼어?”
테타는 하나 남은 쇼핑백을 쥐곤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의 일을 떠올리자니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같이 문 앞까지 가줄까? 사르코프의 물음에 테타는 고개를 젓고선 사르코프의 손을 붙잡았다. 뭐 깨지는 소리 들리면 바로 사람 불러줘야 해.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고 체리드니히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좋은 아침~.”
익숙한 목소리에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테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붙잡았던 사르코프의 손을 빠르게 놓고는 표정을 굳혔다. 사르코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야, 저 사람이 왜 저기서 나와.
“좋은 아침입니다!”
“왕자님, 좋은 아침입니다!”
초콜릿을 건네받은 직장동료들이 쇼핑백을 손에 꽉 쥔 채 허리를 숙였다. 정장 입은 남자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풍경이 왕자님보단 보스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왕자님, 어디 다녀오실 거였으면 저한테 연락하시지 않고…….”
“응? 아니, 별 거 아냐. 눈이 일찍 떠져서 잠깐 산책한 것뿐이야. 아침부터 이런 걸로 부르기도 좀 그렇잖아?”
그런데 손에 그건 뭐야? 눈을 빛내며 묻는 체리드니히의 말에 테타는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는 쇼핑백을 내밀었다.
“발렌타인데이라서 초콜릿을 준비했습니다. 최대한 달지 않은 걸로 골랐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초콜릿? 테타가 웬일이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고요. 체리드니히는 테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타가 쥔 쇼핑백을 낚아챘다. 어째 작년이랑 비슷한 게 벌써부터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테타가 불안에 떨거나 말거나 체리드니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쇼핑백에 붙은 테이프를 뜯곤 내용물을 꺼낼 뿐이었다. 누가 봐도 초콜릿 포장으로 보이는 다크브라운 색깔의 상자가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상자를 흔드니 안에 든 초콜릿이 부딪혀 달각 달각 소리가 새어나왔다. 체리드니히의 눈이 가늘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요리를 내놨는데 맛도 안 보고 플레이팅 먼저 심사받는 기분이었다. 마음에 안 드나? 숨이 가빠왔다.
“단 건 별로긴 한데 테타쨩이 준 성의가 있으니까 받아줄게.”
“감사합니다.”
내 돈 주고 선물하면서 감사하단 말까지 해야 하다니. 사회생활이 힘든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거지같을 줄이야. 그래도 상상했던 것처럼 나쁜 반응은 아니어서 테타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걱정 없이 이틀은 쉴 수 있다.
“테타쨩, 오늘 일 끝나고 저녁에…….”
“네?”
저녁에 시간 되냐고 말하려던 체리드니히는 곧 입을 다물었다. 사르코프는 자신의 쇼핑백에 꽂힌 체리드니히의 시선을 알아채곤 손잡이를 잡은 손에 더 힘을 실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늦은 일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내용물이 보일 리 없을 텐데 제 4왕자는 쓸데없이 눈도 좋았다.
“아냐, 됐어……뭐 해? 다들 일 안 해? 테타, 내가 시킨 건 어떻게 됐어? 이번 주 주말에도 나오기 싫으면 빨리 끝내.”
“네, 오늘 중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체리드니히는 테타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곤 성큼성큼 방으로 향하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잘못한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 그래 일이나 하자. 고민해봤자 테타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었다.
역시 테타쨩~. 오늘 안에 끝낼 줄은 몰랐는데. 수고했어~. 이건 뭐 미친 지킬앤하이드도 아니고. 체리드니히는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화가 풀리다 못해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쯤 되면 조울증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 테타는 왕자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유하는 대신 과찬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뭐가 됐든 왕자의 기분이 풀린 건 테타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었다.
“그동안 주말에도 출근하느라 고생 많았지? 이번 주말엔 안 나와도 돼. 이만 퇴근해서 푹 쉬어~.”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평소의 체리드니히를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의 친절이었다. 테타는 조만간 왕자가 정신과 상담을 받을 거라 확신했다. 아니면 이미 받고 있거나. 체리드니히 뒤에 걸린 벽시계가 여섯 시를 가리켰다. 사르코프와의 저녁약속이 일곱 시니까 아직 한참 여유가 있는 셈이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체리드니히였다. 괜히 책잡히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테타는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뒤돌아섰다. 방이 넓다고는 하지만 문까지 새삼 멀게 느껴졌다.
“아참, 테타쨩.”
“네?”
뭐야. 뭔데. 괜찮아.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어. 긴장한 탓에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초콜릿 잘 먹었어. 받기만 하긴 그래서 나도 초콜릿을 준비했는데 받아줄 거지?”
뭐야. 진짜 왜 저래. 테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체리드니히가 건넨 상자를 받아들었다. 새까만 상자에 달린 피처럼 붉은 리본이 괜히 섬뜩했다.
“보답을 바라고 한 건 아닌데……감사합니다.”
빨리 나가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한 후 걸음을 옮기려던 그 때였다.
“뭐 급한 일이라도 있나봐? 누구랑 약속이라도 있어?”
급한 일도, 약속도 있지만 사내연애중이라 데이트하러 간다고 말했다간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했다.
“아뇨, 없습니다.”
“그래? 잘됐네. 급한 일 없으면 좀 먹고 가. 모처럼 준비한 건데 테타쨩이 먹는 걸 보고 싶어서 말야.”
“네…….”
망설여봤자 사르코프와의 저녁약속이 늦어질 뿐이다.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이쪽에 앉으라는 체리드니히의 말에 테타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참고는 자리에 앉았다. 손가락에 닿은 리본의 감촉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떨리는 손으로 리본을 잡아당기자 큼직하게 부푼 리본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체리드니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테타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상자를 열자 스무개의 초콜릿들이 테타를 반겼다. 저마다 다른 색으로 알록달록, 반짝거리는 게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시중에 파는 것 같진 않았다. 체리드니히가 만들진 않았을 거고 사람을 고용해서 만든 듯했다. 한참을 홀린 듯 바라보는 테타를 체리드니히가 재촉했다.
“안 먹고 뭐 해? 먹여줄까?”
“예? 아, 아뇨, 그게, 너무 예뻐서…….”
뒤늦게 제정신을 차린 테타가 초콜릿을 노려봤다. 체리드니히가 만들진 않았다고 해서 내용물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면도칼이나 바늘, 아니면 독 같은 게 들어있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테타는 금으로 장식된 초콜릿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곤 혀로 누르며 살살 녹였다. 깨물면 입안이 베이거나 찔릴 것 같아서였다. 초콜릿이 녹으면서 이물감이 느껴지는 대신 황홀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입천장이 녹아내릴 것처럼 달면서도 씁쓸한 맛이 나는 게 일품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랜덤인가?
“맛있어?”
“……맛있네요.”
“다행이네. 테타쨩만을 위해서 준비한 거니까 많이 먹어.”
자신을 위해서 준비했다는 체리드니히의 말에 오늘 아침식사까지 죄다 게워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의 테타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며 초콜릿을 먹는 일밖에 없었다. 초콜릿 한 개를 무사히 먹은 테타는 이번엔 붉은색의 하트모양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입안에 넣고 조심스레 깨물자 진한 체리향이 확 풍김과 동시에 초콜릿 안에서 뭔가가 터져 나온다. 술이다. 도수가 높은지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술이 들어간 건 많이 먹어봤지만 테타가 살면서 먹어본 것 중에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었다. 나중에 반응이 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이번에도 이상한 건 들어있지 않는 것 같았다.
테타는 이어서 화이트 초콜릿, 아몬드가 박힌 초콜릿, 분홍색의 장미모양 초콜릿 등 남은 초콜릿들을 입안에 넣어봤지만 뭐 하나 이상한 거 없이 뛰어난 맛을 자랑했다. 와, 진짜 맛있어. 어느새 20개 중 절반 이상을 먹어치운 테타였다. 맛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제 입안이 달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지나친 단맛에 속이 울렁거렸다. 슬쩍 시계를 흘겨보니 어느새 여섯 시 이십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고작해야 초콜릿 먹는 데에 저만큼이나 시간을 허비했다고? 아무리 왕자님 앞이라 신경 쓰며 먹었다고 해도……. 마음 같아선 한 번에 여러 개를 집어 입안에 쑤셔 넣고 싶었지만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체리드니히 때문에 불가능했다. 테타의 손이 다시 초콜릿 쪽으로 향했다.
다 먹었다……! 속이 미식거리는 게 저녁을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분 늦는 정도야 사르코프도 이해해 주겠지.
“왕자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이제 곧 저녁시간인데 왕자님도 시장하실 테니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손목이 붙잡혔다. 왕자님?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테타에게 체리드니히는 빈 초콜릿 상자를 가리켰다.
“뭐하는 거야. 다 먹고 가야지.”
그게, 그게 무슨 소리세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테타를 본 체리드니히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체리드니히가 친절히 빈 초콜릿 상자를 들어보였다. 상자를 치운 곳엔 초콜릿 20개가 담겨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꿈인가. 테타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꼬집을 뻔했다.
“작년에 주는 걸 깜빡해서 2단으로 준비했어.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어서 앉아. 테타쨩을 위해 준비한 거니까 마저 먹어야지.”
“그, 이제 저녁시간이고, 왕자님도 식사를…….”
“응. 그러네. 제 시간에 저녁 먹으려면 테타쨩이 빨리 먹어야겠네.”
머리가 멍했다. 누군가한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니. 얻어맞은 것 같은 게 아니라 얻어맞은 거지. 제 4왕자에게 얻어맞은 뒤통수가 급격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뭐해? 안 먹어? 나 배고프거든?”
“……잘 먹겠습니다.”
누구도 죽지 않은, 평화로운 발렌타인데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