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는 2차 창작 글에선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 원치 않은 결혼, 폭언, 폭력, 생명경시, 자살 및 자살사고, 가스라이팅 등 비윤리적 요소※가 자주 등장하며, 열람 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일절 책임지지 않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젊고 유능했던 그 남자. 자신의 상관에게 등가죽만 남기고 갈가리 찢겨 죽게 된 그 남자. 능력있는 젊은이들을 골라 죽이는 걸 좋아하는 그였기에 그가 살해된 건 어찌 보면 정해진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서도 하필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자신 역시 호감을 품고 있던 그가 살해당한 건 정말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과연 자신과 일말의 관계도 없는 일일까. 자신은 정말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테타였다.
유능한 자들이 그렇듯 체리드니히 역시 부하 직원들에 관해선 아끼는 법이 없었다. 국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족함 없이 자라 원하는 건 뭐든 손에 얻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약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좋은 상관이 되는 것엔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직원복지에 아끼지 않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적당한 무관심이었는데 체리드니히는 이 두 가지를 잘 충족하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고약한 성미에도 아직까지 곁에 사람이 남아있는 이유였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한 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에 생일이나 이름 입사일 취미 등 기본적인 것들을 외워야 했지만 머리가 좋은 그였기에 귀찮은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래. 딱 거기까지였다. 체리드니히가 부하 직원들에게 관심을 주는 건.
그럴 터였는데.
경호원 면접을 본 수많은 이들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인재가 겨우 자기 어깨에 닿을 만큼 조그만 여성이라니. 테타라고 했던가. 삐져나온 잔머리 하나 없이 깔끔하게 머리띠로 넘긴 모습은 그녀의 성격이 어떤 지 잘 나타내고 있었다.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유일한 여성 합격자. 그녀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 지 굳이 듣지 않아도 뻔했다. 성별이 어쨌든 간에 가장 뛰어난 자를 최측근으로 들이는 건 훗날 왕위를 이을 자라면 당연한 일이었고 체리드니히에게 그녀는 가장 가까이 곁에 둔다는 걸 제외하면 다른 부하직원과 다를 바 없었다.
가장 가까이 곁에 두다 보면 알고 싶은 것도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법이다. 습관이나 버릇처럼 사소한 것에서부터 최근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것까지. 여지껏 남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그였기에 이럴 땐 어떡해야 하는게 정답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고민할 건 없었다. 그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그만이니까. 테타 본인에게 물으면 웬만한 건 대답해주는 그녀였다. 이따금 대답해주지 않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의 위치가 위치였기에 그녀 몰래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든 티가 나기 마련이다. 어떻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어서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하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으니. 평소처럼 제안한 저녁식사.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어쩐 일인지 순순히 승낙한 테타였다. 아마 상관의 권유에 계속 거절하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겠지만 서도 체리드니히에겐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맞은 편에 앉아 음식을 먹는 테타에게는 조금의 경박함도 찾을 수 없었고 체리드니히는 즐거운 기분으로 테타에게 이런저런 질문과 되도 않는 추파를 던지며 식사를 이어갔다. 빌어먹을 휴대폰이 지잉지잉 울리기 전까진 말야. 매너모드로 해놓았을 휴대폰이 조용히 진동하고 그와 동시에 테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 걸 체리드니히가 놓칠 리 없었다. 기대가 섞인 그 눈빛은 한시라도 빨리 이 시간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도 담고 있어서 체리드니히 안의 뭔가를 툭 끊어놓기엔 충분했다.
얼마 전까지 분명 좋은 분위기였는데 말이지. 요즘 통 연락이 되지 않아서 어쩌면 그게 단지 자신만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곧 테타는 착각인 편이 더 좋았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체리드니히의 방에는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체들이 부위별로 토막나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자신의 상관이 인체수집은 물론 손수 해부하여 장식해놓는 걸 즐기는 지독한 취미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테타였다. 하나, 둘, 셋, 넷······그새 못 보던 게 늘어서 처음엔 그저 수가 늘어났구나 싶었지. 그 중 하나가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과 연락하던 사내라는 걸 테타가 눈치채게 되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드물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채로 시신이 박제되어 있었으니. 역시 테타쨩이야.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나도 마음에 들었어. 멍청하지도 않고. 정말 갖고 싶더라고. 테타쨩이 눈여겨본 남자다워.
이게, 이게 무슨······. 당장이라도 변기에 달려가 토하고 싶었지만 테타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동요하지 않고 감정을 숨긴 채 과찬이라며 체리드니히의 되도 않는 칭찬에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그······볼일이라는 건? 그냥 단순히 보여주고 싶었어. 테타쨩이라면 알고 있잖아. 원래 예술가들은 자기 작품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법이라는 걸. 테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만 나가도 돼.
이런 일은 후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데 그때마다 테타는 악 소리를 지르는 대신 더욱 더 표정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최근 그의 작품이 되는 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남자들이라는 게 과연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 의문을 품으면서. 이는 체리드니히 본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깊이 생각하는 대신 테타쨩은 내 경호원답게 사람 보는 눈이 있으니까 말야~ 내 마음에도 들었을 뿐이야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자신이 품던 의문이 그저 가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테타는 자신이 누굴 만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던 체리드니히의 말이 말뿐임을 깨달았다. 왜 하필 자신인지. 비록 그것에 대해 알 길은 없지만 대신 테타는 이 모든 걸 멈추기 위해선 자신이 그 누구와도 호의를 주고받지 않으면 된다는 간단명료한 답을 알게 되었고 이토록 간단한 걸 깨닫게 되기까지 몇 명의 사내가 죽었나 생각하면 문득 또 우울해지고 마는 것이다.
테타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본인이 타인에게 호의를 품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타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품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비가 퍼붓던 날이었다. 이미 쫄딱 젖은 채로 상가 건물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테타에게 한 남자가 자신은 집이 가까우니 쓰고 가라며 우산을 불쑥 내밀었고 괜찮다고 사양해도 그는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테타는 그럼 나중에 돌려드릴 테니 번호를 알려 달라며 휴대전화를 내밀었고 또 다시 비극이 시작될 거라곤 그때 당시엔 꿈에도 생각치 못하던 테타였다.
오늘은 이만 가봐도 좋아. 테타는 생각보다 일찍 퇴근하게 되어 남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 지 고민하다 이내 저번에 받은 남자의 연락처를 떠올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열두자리의 번호를 입력하던 남자의 인상은 벌써 흐릿해졌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돌려주기만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테타는 통화버튼을 눌렀고 약속은 테타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잡혔다.
지난 번엔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구실이 필요했거든요. 구실이라 하면······?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요. 마침 비가 와서 다행이었죠. 훤칠한 키에 겉모습도 괜찮았고 신사적이어서 테타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간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꼭 토할 것 같아, 이게 단순한 설렘인지 그것도 아니면······테타는 깊게 생각하는 걸 관두고 제 앞에 놓인 와인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테타가 체리드니히의 경호원으로 뽑힌 건 우수해서인 것도 있지만 동물적인 감각이 큰 게 한몫했을 것이다. 왜 안 좋은 예감은 늘 들어맞기만 하는 걸까. 박제된 그는 테타가 알아볼 수 있게끔 얼굴을 제외하곤 온몸이 난도질되어 손톱과 발톱도 몽땅 뽑힌 채였다. 아, 아······. 그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꼭 토할 것만 같았고 테타는 결국 그 자리에서 그날 먹었던 것들을 죄다 게워내버리고 말았다. 모든 걸 토해낸 테타의 등을 빤히 바라보다 체리드니히는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내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테타쨩,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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